노트가 너무 망가져버려서, 그리고 이 말들만은 오래 보관하고 싶어서 사이트를 하나 만들었어. 그리고 네가 보지 않을 거라면 이게 더 좋겠지··· 어떤 의미로든 정말 철저하네, 그렇지?
다만 암호가 걸린 텍스트 파일이 아닌 접속 가능한 사이트로 만들었다는 건 언젠가 네가 봐 주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몰라.

왜냐면, 내 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람이 너일 거라 확신하거든. 남을 사랑하는 흉내는 낼 수 없지만 배움은 곧 지식을 모방하는 일이라, 네 사랑과 내 소원을 보아하니 우린 태어날 때 부터 마음이 조금 채워진 사람인 것 같아. 그건 좋은 일이 아니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이기에, 우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나 봐. 그러면, 태초의 우리가 밑바닥으로 손을 뻗어야 하는 존재였다면, 내게 필연적으로 정해진 꿈들, 남을 위해 애써야만 하는 모든 행위들이 네게 기만으로 보이진 않겠네. 다행이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서. 하늘에서 내려온 게 아니라 반대편 하늘에서 떠오른 거라 정말로 다행이야.
네게 하고 싶은 말은 충분히 썼는데, 이제 노트가 해지고 젖어 뭉개져서 너도 나도 확인할 방법이 없네. 네게 듣고 싶은 말도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우리는 언제나 정반대의 위치에서 동등한 처지였잖아, 바라는 쪽, 노력하는 쪽, 불화를 부른 건 내 탓이고 평화를 이룬 건 남의 덕이라고 생각하는 쪽,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쪽··· 이라기엔, 이건 이제 아니게 됐다, 그치?
우리 엄청 끔찍한 사람이잖아. 그 손으로 한 사람이 가진 모든 평화와 사랑을 빼앗았지만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지는 않지. 내다버린 거야. 원하는 게 타인의 목숨은 아니었잖아. 목적을 위해서 빼앗아 본 거지 사실 그 사람의 삶 자체는 내게 필요 없으니까 그냥 없애버린 거야. 나 또한 목적을 위해 필요치 않은 수많은 삶을 가져다가 스스로 태워버려서 네게 나설 수 있는 얼굴이 없네. 지금까지 널 만나고 너와 살아온 태초의 나를 제외하면 말야.
유령이라든가 내세 이후의 삶 같은 건 잘 믿지 않지만··· 내가 사는 악몽이 꼭 그들의 한과 나의 업이었으면 좋겠어. 내게 소중했거나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수많은 소원과 꿈과, 희망이 있었겠지. 이뤄질 수 없고 되살아날 수 없기에 나는 이 영원히 반복되는 악몽을 살아가는 거야. 이제 완전히 깨달았어, 납득했어. 징벌의 때가 오기까지 괴로웠었는데 그 괴로움이 벌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내가 이런 걸 바랄 리 없잖아?
그래서, 너를 위해서, 너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살아가면 안 돼. 다시 적는 거지만 정말로 미안한 말이야. 지금껏 살아오며 많은 지식을 쌓아봐도, 결국 태어났을 때 부터 사랑을 품은 마음이라면 한 사람과 한 가지의 꿈을 위해서는 도저히 살 수 없겠어. 나도 내 첫 번째 마음이자 꿈이 있거든.
이런 나를 영영 데리고, 날 꿈에서 깨워줬으면 좋겠어. 그 이후 네가 받을 벌도 충분히 아프고 고통스럽게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폭력은 폭력에 불과하고, 날 죽게 하는 것도 널 죽게 하는 것도 살인에 그치지 않지만, 그렇기에 일부러 정당화하지 않고도 이걸 악으로 규정할 수 있어. 해본 적 있으니까 잘 할 수 있을거라 믿어. 넌 지금 당장 나와 네게 벌을 줘도 괜찮겠지만···

나는 오래도록 꿈을 잊고 살았거든. 꿈을 이룬 채로 살아서 그런지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았어. 내가 이룬 첫 번째 꿈, 내 최초의 지식, 내가 태어났을 때 부터 이뤘고, 이뤘음에도 또 성공할 수 있는 것, 내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게다가, 이젠 나 뿐만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꿈이기도 해.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이룰 수 있는 것이라 결국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이걸 위해 지금까지 처절하게 살았고, 이걸 위한다면 앞으로도 어둡고 우울한 미래만을 좇을 뿐이지. 이제 네게 하고 싶은 말 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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